美学評論家の金田晉教授が研究室に立ち寄った。彼は日本の歴史書などに比べ韓国の歴史書である『三国遺事』や『三国史記』が数世紀ほど遅いことに驚いたという。李朝時代の漢文読み「吏読」を挙げ、質問があった。久しぶりに学問的討論になった。
『万葉集』が韓国語で読めるというイ·ヨンヒ氏の評論はさておき、私の話は吏読より遡って『郷歌』25首のうち『処容歌』など私の卒業論文に戻る講義のようになった。京城帝大の小倉進平教授、戦後の梁柱東教授の研究など、植民地時代の研究がソウル大教授たちにつながったことを話した。韓国の反日政策などで、私は日本に対する考えが深まっていることに気づいた。
미학 평론가인 가나다교수가 연구실에 들렸다. 일본의 역사서 등에 비해 한국의 역사서인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수 세기 정도 늦은 것에 그는 놀랐다고 한다. 이조 시대의 한문 읽기 <이두>를 들어 질문하여 주었다. 오래만에 학문적 토론이 되었다.
<만요슈>를 한국말로 읽을 수 있다는 이영희씨의 평론은 접어두고 나는 이두보다 거슬러 올라가서 <향가> 25수 중 <처용가> 등 나의 국문과 졸업논문으로 돌아가는 강의처럼 되었다. 경성제대의 오구라신페이교수 전후 양주동교수의 연구 등 식민지 시대의 학문이 전후 서울대 교수들에게 이어진 논설을 전개했다. 내가 일본에서 오구라교수의 아들인 학습원대학 학장과 반가운 만남 등을 들어 열강이 되었다. 한국의 반일 정책 등으로 오히려 나는 일본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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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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