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추석의 감각이 전혀 없다. 오랜 과거의 시간 일본도 한국처럼 중국 중심의 음력을 사용하였고 물론 추석도 큰 명절이었다. 그런데 명치 유신 이후 서양의 카렌다를 수용하여 철저하게 음력과 명절도 양력화하였다. 한국도 양력화의 과정을 오래 동안 시행착오의 시간을 겪었다. 나는 민속학을 연구하면서도 철저하게 양력을 실행하도록 노력하였다. 즉 구습을 버리고 서양화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구습은 전통문화 고유문화로서 보전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일고, 국가적으로 민족주의가 강하여 마침내 국수주의 현상이 일고 드디어는 음력화 중국화로 기울어 갔다.
중국이 근대화 서구화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시행되지 않은 채 서구식 시장경제만을 수용하여 경제 대국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런 중국이 지금 세계를 충동하고 있다. 무서운 적대국인 빨갱이 나라라고 선전해 온 정치가들이 북한을 드나드는 현상이 도래하였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의외의 현상이다. 앞으로 더 많은 예측불허의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어제 추석날 서울의 누님으로부터 성묘를 다녀 왔다는 전화와 조카로부터 성묘사진을 메일로 받았다. 나의 조국 고향과의 유일한 강한 연결고리는 누이와 부모 산소이다. 많은 친척 친구들이 세상을 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오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고향은 38선 밑 6.25의 폐허의 땅, 값도 없다는 곳이지만 지금은 북한으로 연결되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원산 등지로 38선을 넘나들면서 소장사를 한 그 세월로 복귀되는 느낌이다. 나는 거기서 무서운 전쟁을 겪고 그것을 상처로 또 삶의 힘으로 살고 있다. 일전에 일본에서 전쟁의 고생담을 적은 글을 책으로 내었다. 신문 기사 등을 모아서 낸 책 전쟁사 류와는 다르다. 나의 귀중한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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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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