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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崔吉城との対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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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村振興政策だった大麻栽培」(東洋経済日報に寄稿文201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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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村振興政策だった大麻栽培」(東洋経済日報に寄稿文2016.12.9)    日本では今、有名な歌手などの麻薬問題が大きく話題になっている。私は大麻が麻薬であるということが気になった。なぜなら私の母も栽培していたことがあったからである。戦前日本の植民地政策、おそらく農村振興運動の一環として奨励されたものであろう。戦前の日本の尾道などでも大麻を多く作っていたという。母が大麻を作ったのもそ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のだろうか。私は母が蚕を供出していたことも覚えている。 先日韓国全羅南道和順郡道荘里への調査旅行で訪ねた村でセマウル運動の時の記録文書や道具などを陳列しているのをみて懐かしく思った。その村は綿花名生産地であったと聞いて、私はその時も母を思い出した。母は野菜や雑穀以外に綿花と大麻、桑の木などを栽培し、木綿、麻、絹の織物をした。綿花と大麻の農作と織物は朝鮮戦争の時まで続けた。母は綿花の種を抜き取り、糸を作り、部屋に設置された織物機械で織っていた。足と腕が動き規則的な音となった。大麻で麻布の生地を作った。母は私に織った木綿と麻でバジチョゴリを作ってくれた。大麻の葉は乾燥させて風邪薬にする程度の薬効があることは知っていた。しかし麻薬の成分があることは知らなかった。 日本では許可を得て栽培すべきであり、大麻を服用して中毒になって捕まったニュースもあった。しかし私には大麻はただ懐かしい物のように感じる。当時私が生まれた故郷では大麻が危険な薬物とは認識されていなかった。アヘンの花も楊貴妃の花として栽培した。織物用や鑑賞用の花として栽培したがそれが麻薬という危険物とは全く知らなかった。 サハリンに住んでいる韓国人たちも大麻やアヘンを栽培していた。それは日常的に栽培して冬など風邪をひいた時、煎じて飲む程度の常備薬でもあった。サハリンから韓国へ集団帰国するある人は引っ越し荷物にそれを入れて発覚、その時飛行機に乗れず苦労したと聞いた。麻薬の基準は何だろうか。 私は10年ほど前タイの北山村町チェンライのアヘン産地として有名なアヘン三角地に調査旅行したことがある。アヘンや麻薬の文化を肯定的に観光資源としていた。町の骨董品屋ではアヘン吸入用道具が陳列されている。山岳民族にとっては効率の良い現金収入の手段であり、短時間で現金が得られるので麻薬や覚せい剤の売買に手を染めてしまう。厳しい取り締まりをうけ、逮捕者も続出している。外国人である私を警戒する人もいた。 台湾人はビンロウを噛む習慣がある。東南アジアでは広く麻薬性のある植物を噛んだり飲んだりしている。私はフィリピン、ミャンマー、インドネシアなどで麻薬性の植物を売っている現場、ベテルナツを噛んで口の中が真っ赤になっている人も見かけた。麻薬文化は生活に密着している。麻薬は麻酔、恍惚などを覚えてやめられない。恍惚は一時的に神秘的な感覚を持たせる。南米の多くのシャーマンたちは麻薬によって神がかる。フィリピンの大統領が麻薬の取締を厳しく行うことも十分理解できる。 「 농촌 진흥 정책 이었던 대마 재배 」 (동양 경제 일보에 기고 문장 2016.12.9)  일본에서는 현재, 유명가수 등의 마약 문제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대마초가 마약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왜냐하면 나의 어머니도 재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 정책, 아마 농촌진흥운동의 일환으로 장려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쟁 전에는 일본 오노미치 등에서도 대마초를 많이 재배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삼을 재배한 것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누에를 공출하고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얼마전 한국 전라남도 화순군 도장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마을에는 새마을 운동에 대한 기록 문서 및 도구 등이 진열되어 있어 감동하였다. 그 마을은 목화 생산지로서도 유명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야채와 잡곡 외에 면화와 삼 뽕나무를 재배 하고 면화, 대마의 섬유로 직물을 했다. 면화와 대마 경작 및 직물은 6.25때까지 계속했다. 어머니는 목화의 씨를 씨약로 빼고 실을 만들고, 방에 설치 된 베틀에 걸터앉아 다리와 팔로 무명 등을 짰다. 삼베 옷도 만들었다. 대마의 잎을 건조시켜 감기 약 정도의 약으로도 사용했다. 그러나 마약 성분이 있는 것은 몰랐다.  일본에서는 대마초를 복용 하여 중독 걸렸다는 뉴스 있었다. 그러나 나는 대마는 단지 그리운 것일 뿐이다. 그 당시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는 대마초가 위험한 약물로 인식되지 않았다. 아편 꽃도 楊貴妃 꽃으로 재배했다. 꽃으로 감상했다. 그것이 마약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다. 사할린에 사는 동포들도 마리화나와 아편을 재배 하고 있었다. 감기 때 달여 마시는 정도 상비약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사 짐에 넣고 비행기에 탈 수 없이 고생했다고 들었다. 약품의 기준은 무엇 일까?  나는 10 년 전 태국 북부 산 마을 도시 치앙라이 아편 삼각지를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편 및 아편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관광 자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골동품 가게에서는 아편 흡입 용 도구가 진열 되어 있다. 산악 민족에게는 효율적인 현금 소득의 방법이며, 짧은 시간 안에 현금이 파생되기 때문에 마약이나 각성제 거래에 손을 대기 쉽게 된다. 엄격한 통제를 받아, 체포 자도 속출했다. 나를 경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만 사람들은 빈랑을 씹는 습관이 있다. 동남 아시아에는 널리 마약성 식물을 씹거 나 마시고 있다. 나는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에서 마약성 식물을 판매하는 현장, 베델을 씹어 입 안이 새 빨갛게 되어 있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마약 문화가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 아편은 무감각, 넋을 빠지게 한다. 황홀감은 신비한 느낌을 갖게 한다. 남미의 많은 무당들이 마약에 의해 신이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필리핀 대통령이 마약 단속을 강화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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