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가의 세 사람, 두 사람은 한국에서 온 크리스쳔이다. 기독교나 교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니 신년 정담처럼 길게 이야기가 되었다. 나의 화제는 신년에는 80세라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는 말이었다. <백세 시대에 80은 아직>이라는 말에 대해 내가 반론했다. 90세 중반의 노인에게 내가 <백세까지>라고 말하였다가 큰 실언이라는 것을 알고 사과한 적이 있다. 남의 나이를 말할 것이 아니다.
나이는 노인에게 바로 죽음이라는 생명 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자 의식이 강한 것 같은데, 중병 중에 나는 왜 죽음을 각오하고 수술을 거부하였을까 자신을 돌아본다.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아주 쇠약해서 살 기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이었다. 그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태이었던 것이다. 그저 아픔과 생명의 한계를 느끼고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이제 건강을 회복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장수를 원한다는 것은건강하다는 것이다.
식량만을 축내는 식충이라고 여겨 19인이나 살인한 청년이 재판중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보다는 인간의 기능을 중시한다. 그만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는 필요없다고 여겨지는 많은 사람이 산다. 그런 무서운 가치관이 그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는 아주 적극적인 지배자였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인간의 반 이상, 아니 다 죽이고 자신 혼자만 남아야 한다는 경지에 이를지 모른다.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는 생명 윤리를 의식하는 가치관이 필요하다. 우리들이 무서운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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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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