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人大隅良典氏がノーベル生理医学賞を受賞されたことに韓国の「ヘラルド経済」新聞の社説に日本人が25人と万歳することや歴史上韓国では一人もいないことを悲しく思い、韓国の科学分野では夢にも考えられないことだと対比されると書いている。ノーベル賞は国家や民族を考慮して配分するものではない。むしろそれらを越え、無視して科学の成果をもって評価するものである。そのように評価されるからこそ権威ある賞なのである。オリンピックのように国家間競争を前提にした国際化的なものとは次元が異なる。授与する側は国家を対象とはせず、それを超越して行うにもかかわらず、それを羨望する側の国家は「わが国意識」をもって期待する。授与側と受ける側の意識は非常に対照的である。
授与は国家単位ではない。研究成果は国家の背景を持つのは当然であるが、賞の趣旨は国家が対象ではない、もっと世界的遠大な人類への貢献度的価値観によるものである。したがって受賞はより栄誉あるものである。それは「施す心と乞食の心」の対比に比喩されるかもしれない。「大隅先生、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일본인 오스미 요시노리씨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된 것에 한국의 「헤럴드 경제」신문 사설은 일본인이 수상자 25명을 기뻐 만세을 부르는 것을 보고 역사상 한국인이 한사람의 수상자가 없는 것을 슬프게 여기고, 한국에서는 과학분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한국과 대비된다고 쓰고 있다. 노벨상은 국가나 민족을 고려해서 배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넘고, 무시해서 과학의 성과만을 가지고 평가해서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위 있는 상이다. 올림픽과 같이 국가간 경쟁을 전제로 한 국제적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여 하는 쪽은 국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데도 그것을 선망 하는 쪽의 국가는 「우리나라 의식」을 가지고 기대한다. 주는 측과 받는 쪽이 아주 대조적이다.
국가단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연구 성과는 국가란 배경을 가지지만, 시상의 취지는 국가가 대상이 아닌, 더 세계적 원대한 가치관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수상은 보다영예로운 것이다. 그것은 「베푸는 마음과 구걸하는 마음」의 차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과학분야는 꿈도 꾸지 못하는 우리의 처지와 너무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는 후보는 고사하고 거명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기초과학 연구 현 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초과학을 홀대하는 사회분위기에선 앞으로도 요원한 일이다.